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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원・조사국에서 높아진 명성…재야(在野)의 재산세 초고수

그가 국세청에 있으면서 쌓아 올린 실력은 2012년 조세심판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으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심판원의 제2조사관(과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처리한 사건의 거의 대부분이 재산분야와 관련이 있었는데, 모두가 인정할 만큼의 깔끔한 일처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처음엔 뜻밖에 이뤄진 심판원 발령으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는데, 법인세 등 다른 세금문제도 그랬지만 특히 재산세 분야가 많고 내가 가진 실력도 발휘할 수 있는데다 일에 재미도 있어서 상당히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회고 했다.

그는 “심판원에서는 국세청 입장뿐만 아니라 납세자의 입장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이를 통해 차원이 더 높게 실력을 배양하는 경험이 됐다”며 “국세청과 납세자 사이의 중간 입장에서 양쪽을 다 보는 시각을 배우는 등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곳에서 그는 철저한 현지조사까지 벌인 것을 토대로 사안을 꿰뚫으면서도 간략하게 안을 만들어 심판관회의에 올렸는데, 상임심판관들이 따로 묻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게 잘 만들어진 그의 안에 만족해했다.

그는 특히 “심판관회의에 안을 만들어 올릴 때에는 과연 이 사건이 기각될 것인지 여부를 나름 예측해보기도 하는데, 최종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더라”며 “국세청이든 납세자든 스스로를 유리하게 하는 주장방법도 깨우칠 수 있었다”고 했다.

심판원에서는 꼭 1년을 채우게 됐는데 느닷없이 이뤄진 인사발령에 울면서 가야했던 심판원인데,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정겹게 사귀면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즐겁게 일에 빠져 있다가 국세청으로 되돌아 와야 할 땐 또 다시 울게 됐단다.

국세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법인은 물론 개인사업자의 조사, 양도・상속・증여세 조사, 주식이동과 자금출처조사 등 거의 대부분의 조사를 하는 중부청 조사2국에 배속, 조사2과장으로서 모든 분야의 세무조사를 총괄했다.

소통과 화합의 귀재이기도 한 그는 2과에 속한 팀장・반장까지 참여하는 소모임을 만들어 잦은 모임으로 친목도모와 함께 정보・노하우를 교환하며 소통・화합했고, 그 결과 ‘조사2과는 조사 실력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팀웍이 으뜸’이라는 평가도 듣는다.

그는 “재산세 분야 조사에선 주식이동이 자주 문제가 된다. 여기엔 증여세 문제나 주식평가문제가 따르곤 하는데, 주식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전문가들조차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특히 “주식이동이나 자금출처 조사는 잘만 대처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무조건 숨겨야 한다는 잘못된 상식과 지식 부족, 또는 잘못된 대처방법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한탄했다.

그는 “세무조사를 해야 하는 국세청은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과세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심증은 가지만 납세자가 스스로 입증을 못한다고 국세청이 증거를 만들어줄 수도 없다”며 “앞으로는 세무사의 입장이 되는 만큼, 이런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일 큰 재산은 ‘국세청 사람들’…동료・가족에 보답하며 살 것

국세청 사람들은 김 서장에 대해 “국세청 직원들은 물론이고 외부사람까지 망라해서 김 서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상대가 누구든 선뜻 다가가 사귈 수 있는 사람은 김 서장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의 대인관계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에서처럼 마치 물과 같아서 막히면 돌아가고 바위도 뚫는가 하면, 구정물과도 스스럼없이 섞이면서 함께 바다라는 공동의 큰 목적을 찾아 전혀 무리가 없이 나아간다는 것. 그를 험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국세청 사람들은 “김 서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일은 꼼꼼하게 챙기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스타일인데, 힘든 일도 기분 좋게 시키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며, “의견경청도 잘해서 다들 맏형으로 생각한다. 힘이 들어도 그와 같이 일하면 즐겁다”고 했다.

국세청 사람들과의 인연을 가장 큰 재산으로 여기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그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대인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동료・후배들에게도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는 편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지난 1983년 결혼한 그는 아내 김정민 여사와의 사이에 1녀1남을 두고 있다. 딸은 이미 출가하여 아동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아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금융권에 입사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단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지만, 고마움과 함께 미안한 감정이 공존하는 대상이다. 그는 “공직자를 남편으로 둔 탓에 아내가 많은 고생을 했다”며 “오랜 공직생활을 무난하게 마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묵묵히 잘 내조해 준 아내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아내에게 비싼 옷을 한번 사주지 못했다. 퇴임을 앞두고 아내가 입은 옷을 살펴보니 흔히 하는 말로 ‘길거리표’이더라”며, “그런 것을 보면 알뜰살뜰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 깊이 찡하는 것이 울림이 돼서 올라온다”고 털어놨다.

이어 “딸이 어학연수를 하러 일본에 갔을 때나 아들이 고3일 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무탈하게 잘 자라 사회에서 자기역할은 찾아서 하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며 “아이들이 앞으로도 금전적인 것보다는 주변사람과 잘 어울리며 멋있게 살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아내에게 비싼 옷도 자주 사주는 능력 있는 남편이고 싶다”며 “퇴직 이후엔 아내와 영화도 함께 보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지금까지 아내가 내게 했던 것 이상으로 보답하며 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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